현재 위치
  1. 게시판
  2. 좋은 습관

좋은 습관

좋은 습관을 만듭니다. 7321디자인

게시판 상세
제목 치앙산타우 chiang san tau
작성자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8-01-29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405


길을 그리다.

12세기 중국에서 나침반의 발명과 서양의 항해술, 조선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지도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이후 15세기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많은 세계 지도가 출판되기에 이른다. 당시 세계 지도는 지금 우리가 아는 지도처럼 정확한 측정기술로 그려진 게 아니었다. 예를 들어 일본이 아메리카 대륙과 맞닿아 있거나 조선이 섬처럼 작게 그려지거나 혹은 한국해가 일본해로 표시되거나 하는 등 지도로서 정확성이 부족했다. 하지만 '실존하는 길과 장소를 그리다'라는 측면에서 고지도가 담고 있는 가치와 역사성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만 고지도의 가치와 역사성은 인정하되 어떤 지도가 옳은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때문에 당빌(D'Anville)의 「신 중국 전도」은 굉장히 중요한 지점에 있다. 이 지도를 만들기 위해 프랑스 선교사들은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국경까지 가서 직접 측지에 참여하였고, 산동반도에서 한반도를 실측하였다. 경도와 위도를 정확히 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객관적이며, 실제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신 중국 전도」는 김정호의 지도보다 1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문제는 이 지도가 국경 문제 연구와 관련해 중요점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경과 관련하여 「신 중국 전도」에서 활자 기록이 발견되는데, 서론에서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 문제, 나라 이름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고 있고, 또 독도뿐만 아니라 만주의 경계선 문제에서 꼭 필요한 중요 자료가 된다.

당빌(1697∼1782)은 평생 동안 지리와 역사 지리를 연구하였다. 그는 각종 지도 자료를 비판적으로 분석, 검토하고 상호 비교하여 선배지리, 지도학자들의 오류를 교정하였기 때문에 그의 지도 제작에 있어서 당대 최고의 권위를 쌓아 올렸다. 그의 1737년의 「신 중국 전도」이 출판된 이후로 거의 모든 서양 지도가 그의 지도를 따랐다는 점에서 이 지도는 근대적인 길을 그리는데 있어 시발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당빌의 지도는 여타의 고지도와 다른 평가를 받아야 한다.

 

공간으로써 지도.

지도는 ''의 영역과 ''의 영역의 구분이다. 타인의 영역과의 구분은 세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확립하는 기능을 하며, 이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국경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도의 영유권과 한국해 표기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존재를 세계 속에서 확인하며 확립하는 역할이 될 것이다.

당빌 그리고 그의 영향을 받은 보공디와 벨랭 등은 국경, 지명과 관련하여 고유 명사의 중국식 발음으로 표기하는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독도와 관련하여 벨랭의 지도에서 치앙산타우chiang san tau라고 표기한 고지도를 발견할 수 있는데, 독도의 삼봉도(三峰島), 우산도(于山島), 가지도(可支島), 요도(寥島)등으로 불려진 옛 이름들 중 우산도(于山島)에서 외국인들의 시각에서 우와천의 한자의 구별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다. 고지도 클라프로트(J. Klaproth)의 「삼국총도」에서 다케시마라는 표기의 지도가 발견되는데, 다케시마 표기 밑에 "a la Coree" "한국에 속한다" 라고 명기하고 있다.

이처럼 서양의 고지도는 서양인으로서 한문이라는 문자 해독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그 객관성이 흐려질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명을 덧붙임으로서 그 사실성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입증시켜 준다. 이러한 점이 우리가 고지도를 해독함에 있어서 중요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지도는 단순히 '그림'이 아니며 '공간'의 설명이며 치앙산타우는 우산도의 우를 천으로 오독한 것이며, 문자의 오독이라 할지라도 서양인들은 이것은 옛 독도의 표기 우산도의 중국식 발음의 치앙산타우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결국 치앙산타우는 독도라는 공간을 서양인들의 그들 나름의 이름인 것이다.

현재 우리가 대한해협이라고 불리는 한반도의 동편 바다의 표기는 고지도에서 "SEA OF COREA"라는 명칭으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18세기에 접어들어 고지도의 표기가 한국해에서 일본해로 고쳐진 표기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문제는 지도가 아닌 세계사의 흐름이라는 시점에서 고찰해야 할 것이다. 18세기는 아시아를 대상으로 서양 열강들이 문호 개방을 요구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 일본은 조선보다 이른 시기 문호 개방을 하였으며, 서양 열강들과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일본은 미국과 영국 등으로 학자들의 유학을 자발적으로 보내게 되는데,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8세기 일본의 이러한 대외적인 활동은 자연스럽게 서양인들이 지도를 만드는데 있어서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국경을 따라 아로새겨보다.

아르데코 7321은 서양의 고지도를 실생활에 옮김으로써 세계 속의 한국 찾기라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한반도는 36년간의 일본의 식민통치와 2년간의 한국 전쟁 후 초토화된 국토 건설과 경제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역사 바로 잡기 및 중국의 동북지역와 독도 그리고 한국해의 국경 표기 문제는 뒷전으로 자연스럽게 밀려나 있었다. 역사와 정치적 문제는 학자들의 뒤늦은 연구와 국민의 열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땅을 포기해야 할 것일가? 아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많이 늦었을지라도 국민은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그 몫을 다할 때 그 소원이 이루어지리라.

우리는 좀 더 행동해야 될 것이다. 먼저 우리 안에서 독도, 한국해, 만주와 연변이 우리의 국토라고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에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아르데코 7321에서 고지도를 이용하여 독도와 한국해가 표기된 제품을 제작하게 된 연유에는 바로 이러한 뜻에서 출발하였다. 세계를 향해 보여줄 더 많은 제품들이 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르데코 7321의 실천은 또 다른 길을 그리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객원기자 우한나

첨부파일
비밀번호 수정 및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댓글 수정

비밀번호 :

/ byte

비밀번호 : 확인 취소

0
bottom
top